프라모델, 플라모델, Pla Model... 그리고 Gundam 기타 등등

수 년전에, 매트릭스 제작자(또는 감독..?)가 제작후기 같은 걸 얘기하는 영상물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가 일본 창작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 양반이 얘기 중에, '아니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거였다. 오.. 사실 당시 꽤 놀랐다. 그 분이 일본문화의 팬인가보다 해서 그런가 했는데.. 요즘은 좀 안다~는 서양 사람들도 Anime 라는 표현을 써주는 것 같은 분위기인가 보다. 사실, Animation 과 Anime 는 다르지. Curry 와 카레가 다르듯. 조상은 같을 지 몰라도, 현재 위치는 꽤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아니메, Anime 즉 アニメ 는 워낙에 영어다. Animation 이 일본으로 갔고, 워낙 말을 줄이는 걸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이 앞부분만 취한 것인데, 강력한 시장장악력의 힘으로 결국 원어를 무색케 하고 새로운 용어를 창조하게까지 만들었다.
심지어 옥스포드 사전(여기)에도 실릴 정도가 됐으니.. 우스운 건 이 사전에선 어원이 '일본어'라고 되어 있다.

Animation 의 어원은 라틴어 Animatus 라고 하는데 이건 '생기를 불어넣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또 Anima 라는 단어로부터 파생됐는데 이것의 뜻은 '생명, 숨결' 정도라고 한다. 결국, 생동감있게 한다는 뜻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정지화면이던 것을 활동사진으로 바꾸면서 만들어진 용어가 아닐까 하는데..

한국에선 이걸 더 줄이고, 나름 영어식 발음을 쓴다고 '애니'라고 하는데, 영어 어원을 따져보면 적어도 M 발음을 넣어줘야 할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일본냄새 물씬 풍기는 '아니메'라고 하든지.

세상에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가 정말 몇 안되듯, 만화영화를 만드는 나라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다.
단편이나, 클레이등 모두 포함하면 좀 더 넒어지겠지만, 상업용 만화영화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나라는 글쎄, 자세히는 몰라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적어도 물량이라면 아마도 일본이 최고일 듯 하다.
한국이 드라마 찍어내듯, 일주일에도 정말 수십편씩 방송이 되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예전엔 나름대로 이 방면에 기술이 있었던 것 같다.
60년대에만 해도 한국/일본 기술이 비슷했다고 하던데,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도 자체 제작 만화영화-물론 그래봤자 극장판이었지만-가 있었으나 80년대 이후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건 만화도 마찬가지이다. 참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죽기 전에, 신동우 화백이나 고우영 선생님, 박수동님같은 분의 그런 만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뭐 그럴 필요있나~ 싸게 일본만화 수입해다 보면 되지..

연전에 '20세기 소년'을 보면서, 가끔 울컥하기도 했고, 뭔가 많이 부럽기도 했다.
그 만화, 뭐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저 소년 시절에 대한 추억이었다.
이러 저러 장치를 많이 넣긴 했지만, 결국 작가가 겪었을(그 양반이 그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 같긴한데..)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 만화책이 있고, 잡지가 있고, 만화영화가 있고, 그리고 Rock 이 있는.
같은 시대였지만, 아직 전쟁 후유증에서 신음하던 우리하고는 조금 많이 다른 그런 분위기였다.

아무튼..
오늘 하고 싶은 얘긴 이런 얘기가 아니고..
결국 나도 어렸을 때 그런 아련한 추억같은 얘길 하고 싶은 거다.

난 어려서 지금은 프라모델이라 불리는, '조립식'을 정말 많이 가지고 놀았다.
여기서 한가지. 프라모델과 조립식을 또 한번 살펴보자.
프라모델은 Plastic Model 을 줄인 말인데, 이건 아직은 영어사전엔 안 올라있는 것 같다. 물론, 위키에는 당연히 올라있다.
아니메야 그 파괴력이 꽤 된다지만, 프라모델이야 그만큼은 아닐테니, 일반화된 단어는 아닌게 틀림없다.
영어로는 'Model Kit' 이라고 하는 듯 하다. 방금 아마존에서 검색을 해보니, 미국내에서도 소수지만 팔리고 있었다. 가격은 같은 모델이 우리나라보다 비싼 가격으로.
어쨌든, 프라모델이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정착화된 단어로 자리 잡는 듯 하다. '조립식'이란 표현은 요즘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조립식하면.. 아카데미과학이 최고 였는데..

어려서 조립식을 많이 갖고 놀았다지만, 비싼 걸 살 형편도 아니고, 왜 그랬는지 혼날까봐 몰래 몰래 사서 만들었기 때문에 늘 사는 것은 비싸야 300원쯤 하던 거였다. 물론, 생일날등엔 좀 비싼 걸 선물 받기도 했지만. '킹모그라스탱크' 가 당시 최고 인기작이었다. 그리고, 전기 모터를 달고 나오던 자동차류. 달려라 번개호도 있었는데, 그건 모터가 아니고 태엽으로 달리는 거였다.

근데, 가지고 놀았다곤 하지만 정말 가지고 놀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더 어렸을 적에, 마징가 제트 인형(이건 정말 인형. 말랑말랑한 재질의 플라스틱으로 만든)을 가지고 한참 놀곤 하던 기억은 있는데, 그 수없이 만든 조립식들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은 없다.

그냥, 만드는 게 좋았던 거다.
만드는 그 자체. 그렇다고 내가 창의성과 공간감이 뛰어나서 만들다가 이리 저리 다른 모양을 내봤느냐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고, 그저 하나 하나 자르고 붙이는 게 좋았던 거다. 건축공사장에서 일을 했음 잘 했을텐데~ ㅎㅎ
그러다보니 조립을 잘 못하는 친구들 건 모두 내가 조립을 해주곤 했었다. 사실, 그렇게 잘 만드는 것도 아니었는데.. 늘, 본드선이 삐져나와서 보기 싫게 되곤 했었다. 하긴, 뭐, 열살도 안 먹은 애가 만드는게 다 그렇겠지.

그러다가.. 중학교쯤 가면서는 딱 끊게 됐다.
애들이 그런 것이, 중학교 가서도 그런 거하면 유치해보인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 것 때문인지 관심이 그냥 멀어져버렸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갔는데, 2학년 땐가 3학년 땐가, 갑자기 그런 조립식을 만들고 싶어져서 비행기를 여객기 하나, 전투기하나를 사서 만들어놓고 내 방 천장에 한동안 붙여놨었다. 음.. 그건 버렸나 보네..

그리고, 이제야 건담이 등장한다.
94년인가, 이리 저리 갈등하던 차에 집 근처 프라모델 판매점에서 건담을 하나 샀다.
그 주인 아저씨, 나름대로 장인 분위기를 내던 분이었는데~

그것이, 내 인생 최초의 건담, F91 이다.
사실, 건담이란 것이 좀 묘하다.
내가 어렸을 땐 일본문화가 들어올 수 없었던 환경이었기 때문에, '건담'이란 걸 제대로 알 길은 없었다.
정식 수입된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애들이었으니까 그저 소문같은 걸로 그런 로보트 만화가 있다더라.. 정도였지.
이름도 각각 이었다. '간담'도 있고, '칸담'도 있고, 정작 '건담'은 어려선 못들어봤던 것 같다. 그래도 '간다무'는 없었다~

20세기 소년에도 이 로보트 얘기가 좀 나오지만, 내 인생의 최초 로보트라면 아무래도 마징가 제트고 그 다음이 태권V 이다. 근데 마징가제트는 장난감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내 눈에 확실히 각인이 된 거 같다. 사실, 뒷 시리즈라면 태권V가 더 많았는데.. 그 땐 그게 정식 판권을 가진 만화였는지 모르겠지만, 만화가게에 가면 태권V 만화도 꽤 있었던 거 같다. 황금날개 시리즈도 김형배님이 그리신 거 말고 다른 분이 그린 것도 더 있었던 것 같고.. 그리신 분이, 차xx 아니었나.. 기억이 날 듯 말 듯..

아무튼, 나하고 건담은 별 추억이 없는 그런 존재였던 거다.
그러다가, F91을 사게 되면서 첫 인연이 이어졌다.
이건, 많이 부서지고 상했지만 아직까지 그런대로 잘 보존하고 있다. 부서진 모습을 보면서 그간 전투를 많이 치러서 그리 됐다고 생각하며..

다행히 그 모델의 조립설명서를 보관하고 있어서 며칠 전에 확인해본 건데, 이건 1/100 모델이었다. 어째 좀 크더라니.
설명서에 다른 얘긴 안써져있는 걸로 봐서 MG는 아니고, 그냥 1/100 인 것 같다. 지금 봐도 MG정도는 아니다. 그냥 HG를 좀 크게 해놓은 정도랄까. 그 때는 HG/MG 이런 등급이 없었는지.

조립을 하면서 정말 놀랐던 것이, 그게 로보트 류 조립은 거의 10년만이었는데, 팔이 움직이고 관절이 돌아가고 무기를 손에 쥘 수가 있단 거였다. 자세도 어느 정도 사람과 비슷하게 취할 수 있었다. 오.. 대단하다. 비싸긴 하지만 역시 값을 하는구나..

첫 경험이 있고 나서, 꽤 오랫동안 또 손을 뗐었다.
그리고 난 다음 기는.. 2003년쯤엔가, 윙건담쪽을 하나 샀었다. 몸체는 조카들을 줬는데, 얘들이 팔아먹었는지 걔들 집에도 없어서 아쉽다. 얜 HG인데 1/100 이다. 얘는 별로 멋도 없고 특징도 없는 애였다.

그 다음은, 저 구석에 쳐박혀 있는 알 수 없는 건담이다. 아마 싸서 산 거 같은데, 언제인지도 기억 안나고. 얘는 색깔이 모두 그냥 회색이다. 어찌 어찌 변신이 되는 건데, 먼지만 먹고 있어서.. 좀 불쌍하기도 하다.

그리고 폭스바겐 뉴비틀도 하나 샀는데, 어려서부터도 그랬지만, 자동차는 진짜 차나 모형이나 나랑은 잘 안맞는 듯 하다. 조립도 시시했고, 완성품도 영 아니다.

그러다가 대망의 2007년.
정말 큰 맘먹고 MG를 하나 샀다. 지금 확인해보니 38,000원이었다. 젠장, 이 모델 요즘은 7만원 정도던데.. 엔화 강세가 무섭긴 무섭구만.. 암튼, 건담 시드 Strike Gundam + IWSP 였다. 오.. 역시 돈값을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었다. 각종 부품들, 도색은 물론 미세한 부분까지 정말 잘 표현돼 있었다. 관절도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근데, 생각해보니 나도 참 대단하다.
2007년 5월에 샀는데, 조립만 하고 데칼(Decal, 발음은 디캘에 가깝고, 전사로 붙이는 걸 말한다)을 아직까지 그냥 놔두고 있었다.
내일 해야지, 내일 해야지 한게 벌써 2년 반이 넘었단 거냐.. 정말, 올해가 가기 전엔 해야겠다.

그 담엔 그 며칠 뒤에, 갑자기 땡겨서 게타로보를 샀다.
이건, 프라모델이라기보단 그냥 장난감에 가깝다. 사실 게타로보는 디자인도 단순하고 건담같은 정밀함은 없기 때문에, 대충 그 모양만 유지하고 있는 정도로 제작한 것 같다. 그래도, 모양은 꽤 예쁘다.

이제 마지막, 바로 얼마전.
건담 30주년 기념작이라고 나온 HG를 하나 샀다.
만들어 놓고 보니 예쁘긴 한데, 굉장히 작다. 1/144 다. 생각해보니 이 크기 모델은 처음 만들어본 거였다.
따로 도색을 하지 않아도 기본 색깔이 초기 건담을 그대로 재현해주고 있고, 관절등도 어느 정도 잘 움직인다.
색깔이 좀 원색에 가까워서 살짝 아동스럽기도 한 면이 있는데, 어차피 초기 기체이므로 뭐, 충분히 만족한다.


이젠..
내게 있어 프라모델의 필요성을 써보고 싶다.
위에 쓴 것 처럼, 그리 많이 산 것도 아니다.
스무살이 넘어서 한 대여섯개쯤 산 셈이니까 많다고 볼 수도 없고, 쓸 데없는 낭비를 한 것도 아니다.

내가 가끔, 저런 걸 사는 이유는..
아무 생각없이 집중을 하고 싶어서다.
정말 머리 속이 복잡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을 때, 이런 식으로 집중을 하게 되면 뭔가 좀 정리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며칠 전에도 HG 모델을 만드느라고 약 세시간쯤 정말 아무 생각없이 눈과 손에만 정신을 할당해줬었다.
음.. 확실히 효과가 있다.
몸을 구부리고 작업을 하느라 목도 어깨도 뻣뻣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머리가 좀 맑아지는 느낌이다.

예전엔 여행도 가고, 무작정 고속버스, 기차에 몸을 싣기도 했지만.. 날도 춥고.. 나가면 고생이니.
다만, 아쉬운 건 HG는 확실히 조립 시간이 너무 짧다. 먹선 넣고 기타 살짝 손도 봐주고 하면 그래도 대여섯시간 이상은 가지만, 조립 자체 시간이 짧은 건 어쩔 수 없다.

음!
아무래도.. 마크로스 알토가 날 부르는 듯 하다..

핑백

  • 아무도안 : 건담, Full Burnern 2014-03-17 01:50:56 #

    ... 전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2009년 12월이었다. 세상에나.. 내가 나이를 많이 먹기는 먹었군. 기억이 이리 가물가물하다니.. http://nemonein.egloos.com/4617854 이 글에 나와있는 스트라이크 건담의 스티커는 아직도 붙이지 못한 채로 있다. 그리고.. 내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200 ... more

  • 아무도안 : 건담 시드 Strike Gundam + IWSP, 대략 7년 만에 마무리 짓다. 2014-03-23 15:59:43 #

    ...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건담. 2007년에 사서 그 시점쯤 조립했었을 것이고, 조립만 완성된 상태로 어제까지 방 구석에 굳건히 서있던 그 친구. 아주 살짝 먹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

Google Analyze


LastFm

MathJ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