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고수, 셀러리. 그리고 시나몬과 계피. 짧은 생각, 긴 글

해외여행 다녀오는 것이 제주도 가는 것보다 흔해진 요즘.
중화권이나 그외 아시아권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가운데 음식 고생을 했다는 이들이 꽤 많다.

물론, 아직도 단체여행의 경우는 현지에 가서도 한식집에서 '食'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곤 하지만...

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외국에서 한국 사람들을 잠깐(아주 잠깐~) 상대하면서 느꼈던 점을 떠올려보면 한국인들이 가장 적응을 못하는 것은 '향(香)' 인 것 같다.

안남미 특유의 냄새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
게다가 끈기 없는 쌀에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
'고수'라는, 해괴한(?) 풀의 향에 인상부터 찌푸리며 '사람'이 어찌 이런 걸 먹느냐고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
그외, 각종 아시아권 향신료에는 코를 쥐는 사람들.


외국 여행을 갈 때, 자신의 나라의 음식(그것에 머물지 않고 '술'까지)을 바리 바리 싸가지고 가는 행태는, 아마도 이 나라에서만 있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외국인들도 이런 사람들이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예전에 '생선회'에 관련된 책을 한 권 본적이 있다.
거기서 주장하는 내용은 크게 두가지였는데, 한가지는 활어회보다는 선어회 먹기였고, 다른 하나는 초장(고추장)보다는 간장을 살짝 찍고 고추냉이를 조금 묻혀먹는(간장에 고추냉이를 풀지 말고)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급적 생선회 자체의 맛을 즐겨볼 것도 권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회만 입에 넣고 우물우물 한참을 씹으며 음미하는 방법을 얘기했는데, 다시 말해서 쌈을 싸서 이것 저것 섞어 먹는 것을 조금 줄여보라는 의미였다.

그 기저에는 한국인들의 식습관에 대한 분석이 있었는데, 요즘의 한국인들은 무조건 짜고, 강하고,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매운' 맛을 원하기 때문에 생선회의 '미묘한' 맛을 감지할만한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태어나서 자라면서 그렇게 훈련받지 못했다는 얘기. 매운맛이라는 것은 혀에서 느끼는 '맛'이 아니라 혀의 '자극'에 의한 통증이므로, 그런 자극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그 자극이 없을 때면 '맛' 자체를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매운 맛이 강해지면 짠 맛을 느끼는 감각도 둔해져서 소금은 자연히 더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 음식 자체의 단맛을 느낄 능력도 떨어지게 되니 인공적인 '설탕'을 첨가하게 된 것이 작금의 한국음식의 상황인 것이다.

(정말 긴 글이 되려나.)


예전에 인기있던 '미녀들의 수다'를 즐겨봤었는데, 난 그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특히나 외국인들이 깻잎을 잘 못먹을 수도 있다는 얘기는, 우물 안 개구리일 수 밖에 없는 내겐 사고의 전환이 되는 좋은 계기였다.
깻잎을 잘 못먹는 외국인, 고수를 잘 못먹는 한국인.

예전, 프랑스인 부부를 집으로 불러서 저녁을 한 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음식의 천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인들이었는데 '파'를 모른다고 했다. 신기하다면서.

(글에 힘이 빠지고 있다~)

우리 동네에는 돼지갈비를 파는 집이 있는데, 이 집에 가면 특이하게도 같이 주는 쌈채소에 '고수'가 같이 나온다. 그것도 조금 나오는 것이 아니라 꽤 많이. 같이 자주 가던 친구는, 고수랑 겹쳐져 있는 상추도 건드리지 않을 만큼 싫어하곤 했다. 내 평생, 한국 음식점에서 고수를 본 건 이 집이 처음이고, 아직까진 마지막이다.
그런데 한국에 고수가 이렇게 희귀한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위 고깃집은 문산에서 시작한 곳이라는데, 문산 지역에서는 고수를 많이들 먹는다고 가게 주인장께서 말씀해주셨다. 일전에 본 글이지만, 강화도에서도 고수를 많이들 먹는다고 한다.
그럼 내가 돈주고 살 수는 있느냐의 문제로 가자면, 아직까진 대기업의 대형할인점에서는 본 적이 없지만, 재래 시장에 가면 어렵지 않게 살 수가 있다. 며칠 전에도 고수를 사면서 주인 아주머니께 일년 내내 나오느냐고 여쭤봤더니, 겨울에 잠깐 안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거의 있는 편이라고 하셨다.
서울에선 한남동 근처에 있던 한 시장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마도 서울/경기권 재래 시장엔 많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고,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천대(?)를 받을 식재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수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고수라는 이름보다는 처음 접했던 지역의 명칭 그대로 '팍취(팍치)' 또는 향채(香菜)/샹차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들 있을 것이다. 또는, 서양 문화에 적극적인 분들은 '실란트로(cilantro)' 라고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

고수는 쌍떡잎식물 산형화목 미나리과의 식물이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이 분류의 식물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 미나리
  • 셀러리
  • 당근(당근? 오오 이건 조금 의외다.)
  • 파슬리
  • 신선초
  • 파드득나물(반디나물;아직 먹어본 적은 없는데, 일본만화 '맛의 달인'에 자주 나온다.)
  • 참나물

당근만이 잎을 먹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잎을 먹는 것으로 유명한(?) 것들이다.
그리고 모두 향이 강한 것들이다. 이 종의 특성이 자체가 그런 것 같다. 다만, 향은 비슷하다기 보다는 확연히, 또는 유사하게 다른 편인데, 대체로 그저 내 생각에는, 이런 채소들은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을 듯 하다.
미나리만 해도 잘 못먹는 사람이 은근히 되는 듯 한데, 그런 사람들은 꼭 미나리 만이 아니라 그런 채소류의 '향'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나마 미나리는 매운탕이라든가, 아니면 보신탕을 먹을 때면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것인데, 주변에선 도무지 보기가 힘든 '고수'를 그것도 외국에서 처음 접하게 되면 헛구역질에 욕지거리가 오르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치커리도 이 부류일 것 같은데,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였다. 하긴, 치커리는 향보다는 맛이 쓴 것이 특징이니. 국화차, 캐모마일차 모두 쓰지 않던가.

그런데..
아래부터는 순전히 내 '편견'에 의한 것임을 미리 밝히고 긴 글 이어가보자.

한국 사람들이 셀러리나 파슬리를 대할 때와, 고수(보다는 팍치 또는 향채)를 대할 때 느낌은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셀러리등등은 서양에서 넘어온, 뭔가 품격이 있는 채소라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입 맛에는 맞지 않지만, 그래도 못 먹는다고 하면 뭔가 촌스럽다는 평을 받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고나 할까.
그러나 고수(aka 팍치, 향채)는 대한민국보다 못살고 생활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시아권에서 유입된 것이라 단정해버리고,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셀러리등과 별 다를 것이 없지만 그 대응은 현저히 달라서, 훨씬 '하대'하고 못먹을 것으로 취급해버리는 것 같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한국의 '전통음식' 에서도 이것이 사용된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김장을 하실 적에는 고수를 꼭 넣으시곤 하셨다. 어린애 입맛에야 그게 맞을 리가 없었겠지만, 김치에 들어가서 같이 푹익어버리면 나중엔 향이 다 날아가서 그냥 김치맛 뿐이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고수를 알게 된 것은, 나도 역시 해외여행을 통해서였다. 태국에서였나, 싱가포르에서였나, 어디선가 처음 맛을 보고, 아.. 이게 그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기억이 아련~ 하다.

고수만이 아니라, 난 각종 나물을 참 좋아한다. 예전에 한 친구(물론 여성이었는데)가 내게, '남자들은 나물 잘 안좋아던데, 넌 좀 특이하네.' 라고 얘기했던 기억도 난다. 뭐, 내가 특이한게 어디 그거 하나 뿐이랴...

그런데, 이건 특이하고 뭐고도 없는 거다. 그저 어려서부터 먹었으니 나이들어서도 그냥 맛있게 먹을 뿐.
나도 어려서 접하지 못했다면, 나이 먹고서 잘 먹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정월대보름 때면 한상 가득했던 나물의 향연이 가끔 그리워질 때가 있다. 여기서 나이를 더 먹으면, 이 추억은 아마도 코끝 시림을 동반하겠지.

그런데, 난 적어도, 입맛에 맞지 않는, 더 나아가 내 사고방식과, 관념과, 문화와, 이념(??? 그런게 나한테 있나..?)이 다른 무언가를 평할 때, 적대감을 표시하지는 않도록 노력한다. (물론, 이것도 어려서 가족들로부터 배운 것 중 하나다.)
이부분이 요즘 사람들한테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더구나 그 상대방이 자신 보다 어떻게든 약자라는 생각이 들면, 가차없는 공격마저 서슴지 않는 분위기다.

친구랑 이런 저런 쓸데없는 수다를 떨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반 농담이었지만, 어떤 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 시나몬(Cinamon)은 좋아하는데, 계피는 못먹어요.

진짠지 거짓말인지는 모르겠지만 ^^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전 고수?? 아휴 그런 건 못먹지만, 실란트로(Cilantro)는 좋아해요~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ㅎㅎ

나랑 같지 않은 문화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
우리는 그것을 너무 경제력으로 구분지어 상층문화와 하층문화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그 문화라는 것을 너무나 일부분만 취사선택하여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그 사람들의 문화와 의식을 존중해주는 세상은 과연 이 땅에도 뿌리내릴 수 있을런지..?
그것은 결국 교양과, 그 교양을 심고 키워줄 수 있는, 결국은 '교육'의 문제가 아닐런지...

고수 얘기하다가, 마치 인생의 고수(高手)인양 주절대고 말았네. (채소 '고수'는 순우리말인가 보다. 사전에 한자어표기는 없는 걸 보면.)
찌뿌등한 토요일 오후에 말이지..

덧글

  • 랭보준 2018/09/15 14:14 # 삭제 답글

    고수 못먹는사람 구글검색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오래된글이지만 덧글을 답니다.
    고수를 못먹는건 문화권 수용에 관한것이 아닌 DNA의 영향입니다. 변이된 후각수용체 OR6A2가 있는 사람들은 고수 향을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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